창작물에서 세계관은 다양한 표현들의 기저에 위치하는 통합적 견해다. 《외로운사람되기》 연작은 쓸쓸함이나 고립감으로 외로움을 해석하는 상투적, 부정적 견해보다는 생의 모험적 감각으로 해석하는 본질적 견해를 강조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파생되는 서사, 배경, 등장인물, 조력자, 목적지 등은 빠짐없이 작품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일관적 지표로써 작동한다. 세계관을 설정하는 행위의 핵심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혹은 작품이 구사하는 그 어떠한 전략이나 표현도 결국 작품의 목적을 향하므로, 존재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관은 작품 내부에서는 모티프별로 분리된 각각의 이야기들을 긴밀하게 연결하면서, 작품 외부에서는 창작자에게 중심 잡힌 자유로운 발상 및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드러내기’는 본인이 《외로운사람되기》 세계관을 나타내는 주 방식으로, 형상 표현에서 ‘묘사하기’와의 차이를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어떤 외부의 명확히 존재하는 대상을 속속들이 탐구해 서술하거나 그려내는 것을 ‘묘사하기’라고 한다면, ‘드러내기’는 가려져 있던 무언가를 밝혀내거나 드디어 눈에 보이게 하는 것이다. 본 연작은 창작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작업 과정 또한 실재하는 대상을 보고 작품 각각의 완결성에 복무하는 요소들을 취사 선택하거나 참조해 화면에 옮기는 것과 거리가 있다. 대신, 작업의 주제와 밀접한 부분들을 본인의 구상으로부터 독립시켜 즉각적으로 표현하되, 일부 탈락, 실패한 부분들은 나중에 수습하게 되는 것이다. 대상이 가진 진의를 파악해 화면에 옮기는 것보다, 세계관과 주제 표현에서의 주관적 흥미와 가능성을 화면 안에서 끌어내는 데 집중하려는 모든 움직임이 바로 ‘드러내기’다.

회화의 구조 안에서는 한지와 동양화 물감을 사용해 ‘드러내기’를 수행했다. 진한 색채를 갖는 붉은 색 계열 포스터 칼라 물감을, 흡수가 잘 되면서도 겹겹의 표현이 가능한 장지에 채색함으로써 연작 전반적으로 강렬함 속 공간감이 느껴지게 한 것이다. 작품의 분위기를 담당한 색채는 대부분 값싼 공업용 재료이기도 한 포스터 칼라 물감으로부터 창출되었는데, 이는 본인이 이전부터 꾸준히 가지고 있던 동양화 제작의 효율성에 관한 무의식적 갈망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과거 ‘게임’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을 제작했던 본인은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촉진하는 감각들, 예를 들어 (1) 빠른 적응력과 실행력 (2) 전략 및 효율성 추구를 따라, 작품 제작에서도 포스터 칼라 물감을 선택해 사용했다. 그리고 게임 속 플레이어 혹은 《외로운사람되기》의 주인공이 그러하듯, 빠르게 세계 속에 녹아들 수 있는 점, 분채나 석채와 같이 물감을 개는 과정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편의성이 존재하는 점, 일반 동양화 물감에 견주었을 때 상대적으로 높은 발색력을 보이는 점, 그리하여 한지에 사용했을 때도 수정이 용이한 점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포스터 칼라의 사용은 본인에게 연속적인 회화적 반응을 일으켰다. ‘드러내기’를 거치며 탈락, 실패한 요소들을 수습하는 데에는 개별 작품 자체를 실패작으로 치부하거나, 계속해서 더 그리고, 확장하고,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 화면을 다시 만들어나가는 행위가 필요하다. 짙은 물감을 활용해 화면을 수습해나가는 과정은, 작업에서 ‘드러내기’의 방식을 채택해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작업의 세계관을 완결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려는 본인 작업 전반의 태도와도 맞닿는 지점이다. 그래서 《외로운사람되기》는 끝나지 않는, 계속하여 수습하는 화면으로 채워지는 서사가 된다. 주인공이 거친 자연에 굴하지 않고 독립적 모험을 하는 모습에서는, 인간의 끈기와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때문에 이는 즉,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외로운 생을 모험하듯 치열하게 살아나가는 행위 자체를 은유하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